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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샹 셀리나 인터뷰 : 코소보를 향한 야심을 가진 맨체스터 시티의 어린 선수.

버샹 셀리나는 선구자가 되고 싶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태어난 노르웨이가 아닌 그가 자란 코소보를 선택했다. 코소보는 단 한 번도 큰 대회에서 경기를 치른 적이 없다. 그러나 셀리나는 아직까지 월드컵에서 코소보 선수로서 뛰는 걸 꿈꾸고 있다. 안 될 이유는 뭔가?


이는 그가 가진 야심찬 상상력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이 19세 소년은 내일 맨체스터 시티가 첼시를 상대로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치르는 치르는 FA컵 5라운드 경기에서 처음으로 선발로 나올 것으로 보인다. 마누엘 펠레그리니 감독은 다음 주 키에보를 향해 먼 거리를 떠나 치뤄야 할 챔피언스 리그 경기를 대비해 어린 선수들을 기용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올해 19세인 켈레치 이헤아나초는 이번 시즌에 이미 9골을 기록했고, 셀리나는 그 다음으로 승급할 선수이다. 셀리나는 펠레그리니의 1군 팀 선수들과 거의 18개월 동안 훈련을 받았고, 얼마 전에는 교체 선수로서 데뷔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2주 전, 맨체스터 시티가 레스터 시티에게 패배한 경기에서 셀리나는 얼마 되지 않는 출장 시간에도 완벽한 크로스를 통해 세르히오 아게로의 득점을 도왔다.


셀리나는 "나에게 있어 자랑스러운 순간이었으나, 팀이 졌기 때문에 딱히 의미는 없다."고 말했다. 이번 인터뷰는 셀리나에게 있어서 처음으로 영국의 신문사와 치른 인터뷰였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에서 4년 가까이 머문 그의 영어 실력은 완벽했다.


셀리나가 포함된 시티의 유소년들은 전 세계로부터 모였지만 그들은 맨체스터에서 함께 자라왔다. 작년 4월, 이들은 FA 유스 컵 결승전에서 첼시를 상대했고, 5-2로 패배했다.


"FA 유스 컵 우승을 따낼 수 있는 마지막 해였고, 우린 정말 열심히 뛰었다." 셀리나는 곧이어 "최고의 팀이 이겼지만 매우 실망스러운 저녁이었다."라고 말했다.


내일 몇 명의 선수들이 스탬포드 브릿지로 떠난다. 이번에는 유소년으로서가 아니라, 1군 선수로서이다. 그의 마음 속에는 복수심이 남아있을까?


 "만약 복수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내 마음 속에서는 이미 복수가 끝났다. 우린 U21 리그에서 첼시를 상대로 2-0 승리를 거뒀다." 당시 이 경기에서 셀리나는 공격혁 미드필더로서 뛰었고, 프리킥으로 한 골을 넣었으며, 티에리 앰브로스의 득점을 도우기도 했다. "이번 경기는 다르다. 훨씬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셀리나는 스스로가 더 나아갈 준비가 되어있다고 믿고 있다. 그는 펠레그리니가 감명깊게 본 시티의 어린 선수들 중에서 가장 노력해왔다고 생각해왔다. 셀틱, 미들스브러, 더비 카운티에서는 임대 영입을 위해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기도 했으나, 펠레그리니에 의해 거절당했다. 사미르 나스리, 케빈 데 브뤼네가 부상당한 시점에서 펠레그리니는 창조성있는 선수가 필요했다. 시티는 현재 셀리나와 계약 기간이 5년 하고도 반 년에 달하는 새 계약을 맺으려 한다.


펠레그리니는 이제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에서 지휘봉을 잡고 있을 시간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았지만, 셀리나는 그에 대한 감사의 빚이 남아있는 듯 했다.


"그에겐 매우 감사하고 있다." 그가 말했다. "나는 그를 좋아하며, 그 또한 나를 좋아한다고 느끼고 있다. 그는 나에게 내가 뭘 할 수 있는지를 굳이 보여줘야 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게 나를 더 나은 선수로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는 모든 걸 단순하게 하고, 공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는 가장 좋은 교본이 있다. 다비드 실바이다. "실바를 보며 배웠다." 셀리나가 말했다. "그가 플레이하는 방식, 그가 공을 패스하는 방식, 그가 어떻게 공을 다루며 그걸 잃어버리지 않는지에 대해, 경기 중 그가 보여주는 디테일한 모든 모습을 배웠다."


셀리나는 공을 좀 더 디테일하게 다루고 있으나, 수비적인 면에서는 더 나아져야 한다는 점을 인정했다. 기교로 봤을때 그는 어느 팀에서도 좋은 선수이다. "난 공을 많이 잃어버리진 않는다. 나에겐 그럴만한 좋은 솜씨가 있다." 라고 말했다. 그는 굳이 겸손하게 말하지도 않았다. "난 내가 공과 함께 있을 때 뭘 할 수 있는지 알고 있다. 내가 만약 제대로 결정한다면, 그 어떤 수비수도 내 근처로 오지 못 한다."


경기장 바깥에서 셀리나가 내린 결정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국가대표로서의 미래이다. 그에게는 현대 축구 선수로서는 흔할 수도 있는, 그러나 결말은 다른 사연이었다. 그는 1996년 9월, 코소보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알바니아 국경과는 겨우 20분 거리였다. 1998년, 전쟁이 발발하려 함에 따라 그의 의머니는 어린 버샹-비록 그는 기억 못 하지만-과 그의 형을 데리고 노르웨이로 떠났다. 그들은 드람멘에 정착했고, 그 곳의 이민자 사회에서 버샹의 아버지와 모이게 된다. 그의 사촌 대부분은 집에 머물렀다고 한다.


셀리나는 학교에서는 노르웨이어를 썼고, 집에서는 알바니아어를 썼다. 그는 매일 저녁 그곳의 코소보 출신 소년들과 "대여섯 시간"동안 축구를 했다. 그는 텔레비전으로 프리미어 리그 경기를 보며 항상 그곳에서 뛰고 싶어했다.


셀리나는 좋은 선수였다. 스트룀스곳세의 학생으로서 그는 국가대표 연령대별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난 노르웨이에서 자랐고, 노르웨이를 위해 뛰고 싶었다." 그가 말했다. 당시 그는 노르웨이 U16에서 뛰고 있었고, 시티가 처음 그를 발견했던 때이기도 했다. 그는 여전히 스스로를 노르웨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의 에이전트와 대화할 때에도 노르웨이어를 썼다.


그러나 2008년 코소보가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2012년에는 당시 스위스 대표팀 선수였던 코소보 출신인 제르단 샤키리, 발론 베라미, 그라니트 샤카 세 명이 코소보도 국가대표 경기를 치를 수 있어야 한다고 제소했고, 피파는 인정했다. 그래서 2014년 3월에는 코소보 국가대표팀이 아이티를 상대로 미트로비차에서 처음으로 공인된 친선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17세였던 셀리나에게 상상도 못 한 새로운 기회가 생긴 것이다. 첫 경기에서 그는 벤치에 있었다.


"난 코소보 국가대표로 뛰고 싶었다. 그럼으로써 조국을 위하는 데, 명성을 세우는 데, 좋은 팀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고 싶었다." 셀리나가 말했다. "모든 국가는 국가대표팀이 있어야 한다. 난 조국이 우릴 지지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셀리나는 마침내 코소보에서 첫 골을 넣은 순간에도 노르웨이 U21 팀에서 뛰고 있었다. 작년 11월 프리슈티나에서 치른 감격적인 경기에선, 모든 관중들이 양 팀을 응원했다. 그러나 올 해에는 한 쪽을 선택해야 했다.


코소보는 UEFA와 FIFA로부터 승인을 받기 직전이다. 이번 5월에 그렇게 된다면 2018년 월드컵 예선에 참가하는 팀이 된다.


셀리나는 고심끝에 곧 토너먼트 단계에서 뛸 수 있는 노르웨이가 아닌 그가 태어난 곳을 위해 뛰기로 결정했다. "내 심장이 그 곳에 있었다."라고 셀리나는 말했다. "코소보에 돌아가는 때에는 꼭 집에 가는 것 같다."


피파로부터 승인을 받게 되면 더 많은 자금이 돌게 될테고 팀은 당연히 나아질 것이다.


"경기장이 최상의 상태는 아니다." 셀리나가 말했다. "그러나 피파가 우리를, 그리고 우리가 새 경기장을 지을 만한 돈을 투자할 거라는 걸 인지한다면 그건 나아질 확실히 나아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건 상관할 바 아니다. 이곳의 분위기는 엄청나기 때문이다."


코소보 팀의 선수들은 대부분 셀리나같은 경우에 해당한다. 대부분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에서 자랐다. 많은 선수들이 조국을 떠나있는 시점에 그들 중에서 셀리나만큼 잘하는 선수는 많지 않다. 코소보가 첫 경기를 치르기도 전에 벨기에를 선택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윙어 아드낭 야누자이의 부모님 역시 코소보 출신이다.


원 출처 : http://www.independent.co.uk/sport/football/fa-league-cups/bersant-celina-interview-manchester-city-kid-with-big-ambitions-for-kosovo-a6884646.html